AI가 생겼는데 PM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 — 축하한다, 이제 병목은 당신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지난달 기사를 하나 냈다. 관리자들이 AI의 산출 속도에 잠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안에 인터뷰이의 육성 한 문장이 있는데, 읽고 몇 초간 멍해졌다.
“30분마다, 누군가 내가 반드시 봐야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온다.”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이 문장에 몸으로 공감할 것이다. 예전의 리듬은 이랬다. 리뷰 미팅을 열고, 요구사항을 한 번 설명하고, 다운스트림이 받아 가고, 2주 뒤에 보자. 그 2주 동안 당신은 문서를 쓰고, 사용자를 만나고, 다른 회의를 했다 — 솔직히 말하면, 다운스트림이 생산하는 동안 당신의 판단은 퇴근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엔지니어가 AI를 끼고 일하니 오후에 낸 요구사항이 저녁이면 결과물로 돌아온다. 당신이 직접 Claude Code로 짠 프로토타입은 20분 만에 굴러간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것이 당신을 쳐다본다, 다음 한마디를 기다리며. 생산이 더 이상 기다림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판단은 더 이상 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 바빠졌다”의 메커니즘 전부가 이것이다. 일이 많아진 게 아니라, 과거 “다운스트림이 일하는 중”이라는 명분 속에 숨어 있던 숨 돌릴 시간을 AI가 몰수해 간 것이다.
병목이 당신 머리 위로 옮겨왔다
Andrew Ng은 최근 이 일을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 “엔지니어는 10배 빨라졌는데, 프로덕트 매니저는 같은 속도로 빨라지지 않았다 — 이제 병목은 그들이다.” 그는 1년 전이라면 농담처럼 들렸을 숫자도 하나 언급했다. 어떤 팀이 프로덕트 매니저 1명에 엔지니어 0.5명을 배치하자고 제안했다는 것. 엔지니어를 반으로 줄이자는 게 아니다. 같은 엔지니어링 생산능력에 이제 반 명분의 인력이면 충분한데 — 그 생산능력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일은 PM 한 명으로도 모자란다는 얘기다.
LeadDev 쪽의 관찰은 같은 사건의 다른 단면이다. AI는 개발자를 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모두를 더 바쁘게 만들었다 — 기계가 산출한 것은 하나하나 전부 사람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코드는 두 배가 됐는데 리뷰하는 사람은 두 배가 되지 않았고, 프로토타입은 열 배가 됐는데 “이 방향이 맞는가”를 결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당신 혼자다.
업계 전체가 2년 동안 “프로덕트 매니저가 AI에게 제일 먼저 잘리지 않을까”를 토론했는데, 2026년의 현실은 정반대다. 생산 측이 전면적으로 가속된 뒤, 가장 희소한 자원은 다름 아닌 제품 판단력이다. 병목이 있는 곳에 희소성이 있고, 희소성이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 그러니 “더 바빠졌다”는 일단 나쁜 소식이 아니다 — 프로덕트 매니저가 이렇게까지 필요했던 마지막 시기는 모바일 인터넷 골드러시 때였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훈수 두기”는 함정이다
다만 안도하기엔 이르다. 같은 피로라도 두 가지 피로가 있고, 방향은 정반대다.
첫 번째는 자신을 인간 CI로 사는 것이다. 다운스트림이 무언가를 내놓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결재한다 — “여기 파란색으로”, “이 인터랙션은 아니야”, “한 버전 더”. 결재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하나하나가 신속하다. 당신은 고가용성 승인 서버가 됐다. 이 길의 문제는 고되다는 게 아니라, 확장이 안 된다는 데 있다. AI의 생산능력은 앞으로 또 10배가 오르겠지만, 당신의 뇌는 아니다. 오늘은 30분에 하나씩 보지만, 내년엔 3분에 하나씩이다. 어쩔 셈인가?
그리고 듣기 싫은 말을 하나 보태자면, 건별 결재는 부지런해 보이지만 실은 판단력의 소매 판매다. 가장 비싼 자원(당신의 판단)으로, 가장 값싼 일(흠잡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피로는 판단을 선불 도매로 넘기는 것이다. 다운스트림이(사람이든 AI든) 손을 대기 전에,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한 번에 끝까지 말해두는 것. 타깃 사용자는 누구인지, 어떤 상태는 반드시 실제여야 하는지, 어떤 경우가 실패인지, 취향의 마지노선은 어디인지. 이걸 분명히 말하는 것은 흠잡기보다 훨씬 머리가 아프고, 진짜 피곤한 부분은 바로 여기다. 하지만 그 보상은 구조적이다. 판단이 생산 과정 안에 주입되는 것이지, 생산의 출구를 막아서는 게 아니다. 같은 한마디가 산출물 하나가 아니라, 앞으로의 산출물 백 개를 다스린다.
예전엔 한 번 지휘하면 2주를 다스렸다. 지금은 한 번 지휘하면 20분을 다스린다. 잘못된 건 AI의 속도가 아니라, 당신이 여전히 “단계별 지휘”라는 방식으로 판단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말하면 AI가 만든다”(言出法随)에서 “말한다”의 진짜 의미다 — 잔소리식 실시간 원격 조종이 아니라, 의도와 기준과 경계를 한 번에 분명히 말한 뒤, 실행이 당신의 판단을 싣고 달리게 하는 것. 우리는 방법론에서 이 일을 다섯 단계로 쪼개놨는데, 핵심 동작은 단 하나다. Define 단계에서 AI가 거꾸로 당신에게 먼저 질문하게 만들어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테이블 위로 끌어내는 것. 다 만들어진 뒤에 한 라운드씩 고쳐 나가는 게 아니라.
힘을 아끼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직접 만들기
PM이 더 바빠진 데에는 간과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당신의 판단이 통역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다운스트림에게 설명하고, 다운스트림이 한 번 이해하고, 만들어 오고, 이해가 어긋났음을 발견하고, 다시 설명하고 — AI가 생산 사이클을 분 단위로 압축한 뒤, 전체 루프에서 통역 손실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커졌다. 커뮤니케이션이 주된 비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비용은 이제 그냥 잘라낼 수 있다. 많은 것들을 당신은 누구도 거치지 않고 AI에게 직접 말해서, 스스로 고충실도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다. 지휘, 생산, 검수 세 역할이 한 사람 안에 합쳐지면 루프에는 통역이 없고, 기다림이 없고, “내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가 없다. 같은 것을 만들어도, AI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이 다시 AI에게 옮겨 말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아끼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오해의 사슬 전체다.
판단
“AI가 생겼는데 왜 더 바빠졌나”라는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은 이렇다. 병목이 처음으로 또렷하게 당신 위에 떨어졌고, 이제 “일정 잡는 중입니다”, “개발 중입니다”가 앞을 막아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요구사항 한 번 설명하고 2주를 쉴 수 있었던 과거의 안락함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이 당신에게 준 복지였다 — 효율이 올라왔으니, 복지는 당연히 회수된다.
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곤한 방식은 고를 수 있다. 남의 산출 리듬에 끌려다니며 30분마다 한 번씩 결재하다 타버리거나, 아니면 힘을 앞에 쓰는 것 —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분명히 말해두고, 산출물 백 개가 당신의 판단을 싣고 알아서 달리게 하는 것.
전자의 피로는 일용직의 피로다. 후자가 이 직업의 본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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